사물의 친근함

사물에 관해 생각하는 요즘, 나는 ‘사물을 얼마나 친근하게 느낄 수 있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요 몇년 전 부터 디지털 경험, 사물이 더 즐비해진 요즘 물리적 사물과 나와의 관계는 어딘가 ‘이상한 중요한 지점’을 갖게된다. 그건 회화에 관한 회의적인 마음,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것이 왜 이상하면서도 ‘중요한 것’이냐면, 내가 사물의 따뜻함을 특별히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물의 따뜻함은 일상의 빛에 관한 특별한 관심을 기반한다. 그리고 그것인 특별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의 유실은 어떤 헛헛한 타격감을 준다. 그것은 곧 그리는 의미의 유실로도 연결된다. 보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처음의 시작은 인물 이전 사물과 풍경이다. 그리는 사람에게 이렇게 중요한 대상인 내 몸과 맞닿는 사물이 '특별함’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그 개인적 경험과 질문은 작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정물화 (Still Life)’에 있다. 사물과 풍경에 관해 다시 생각하는 지금은 풍경화를 다시 그려봄으로서 알 수 있겠지만, 결론은 이 과정을 통해 2016년부터 그리던 ‘풍경’을 다시 꺼내보게 되었고 회화에서의 풍경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풍경은 우리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다.”
– W.J.T. Mitchell, Landscape and Power

과연 풍경은 물리적 장소성을 벗어난 밖과 안, 감각, 정체성의 지형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친근함, 시간성이 사라진 지금 정적인 풍경은 역설적으로 여전히 내가 믿는 지점 -사물과 풍경의 내밀함-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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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nsformation of Silence into Language and Action by Audre Lo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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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과 노랑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