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집 2016
난 잠이 오는데 넌 춤을 춰야겠다는구나 /이성휘 큐레이터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에서 주인공 토니오는 어린 시절 호두나무 아래서 시를 쓰며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은 왜 이렇게 생겨 먹어서 이들과 충돌하며 화합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가 흠모한 미소년 한스나 금발의 소녀 잉게보르크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환대 받는 반짝이며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토니오는 자신이 부러워한 한스가 되려 하기 보다는 한스를 자기 가까이에 두고 싶었고, 귀여운 잉게보르크의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는 떨리는 마음을 속으로만 고백하였다. 사실 그는 자신이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가 동경하는 세계는 한스와 잉게보르크가 누리고자 하는 행복한삶이었지만, 동시에자신이가야 할길에대해서는 일관되게답할 수없었다.그는수많은 삶의가능성 중에 시인이 되었고, 평단으로부터 격찬을 받는 작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여자친구에게 “악의 없고 단순하며 생동하는것에 대한동경을 모르는자,약간의우정, 헌신,친밀감,인간적인행복에 대한동경을모르는 자는아직 예술가가 아닙니다.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을 알아야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그의 여자친구는 “당신은 그릇된 길에 접어든, 길 잃은 시민이다”고 하였다.
임수정은 스스로를 토니오 크뢰거에 빗댄다. 그것은 평범한 삶과 예술가의 삶, 그 어느 세계에 속하는 삶도 확실히 추구하지 못하고 번민하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토니오의 여자친구가 말했듯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예술가는 길잃은 시민으로비춰질 수있다.그러나 삶이 가져다주는 여러가지 경험과 고통,환희에 대해서 적어내려 가고자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삶이 가져다 주는 행복으로 곧장 뛰어들기보다는 차라리 생동하는 것에 대한 은밀한 동경을 택한다. 그것이 토니오가 말한,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이다.
돌, 벽돌(의 격자), 원고지(의 격자), 붉은 벽돌, 돌과 나무, 이들은 최근 임수정이 그리는 풍경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이자 그녀가 강박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사물들이다. 우리는 불쾌한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도리어 대면하기로 했을 때 더욱더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생기는 아이러니를 겪곤 한다. 임수정에게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던지는 사물이, 빼곡히 박혀 있는벽돌, 이벽돌담장 사이에 끼어 생존하고 있는 나무, 이런 것들이다.그리고 이들을 대면하기로 한 이상 그녀는 벽돌의 격자 쌓기와 흡사한 200자원고지위에드로잉을 하고,붉은인주를 펴발라빨간 벽돌을묘사한다.붉은 인주의 치명적인강렬함은 본디인주가 광물가루였던바,돌에서 기원한것이라고 할수있다.그러므로 그녀는원고지 위에 붉은 돌가루를 문지르고 펴 바른 셈이고, 이것은 그녀가 기억과 대면하면서 느끼는 아이러니를 그 매개체인 사물 위에 문지르고 펴 발라 처절하게 맞서려는 의지와도 같다. 따라서 우리가 다만 새빨간 인주의 색에 매혹되어 황홀해 하고 있을 때 정작 그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난 잠이 오는데 넌 춤을 춰야겠다는구나." 즉, 작가는 평범한 행복에 화합하지 못한채 잠을청하는데,우리는 붉게생동하는행복을 바라며환희의 춤을추고자하는 것이다.그러나우리는 토니오 크뢰거의 여자친구처럼 임수정을 그릇된 길로 접어든, '길 잃은 시민'이라고 하지 말자. 임수정은 토니오 크뢰거처럼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을 이미 알고 있을 뿐이다.
붉은 이웃 The red neighbors
Red cinnabar paste on hanji
72.7×60.6cm 2016
붉은 집 (드로잉) The red house (drawing)
rotary date stamp on manuscript paper
17.5 × 25cm 2015
붉은 집 The red house
mixed media on hanji 150.0×150.0cm





